기호지세 [ 騎虎之勢 ]
騎(탈 기) 虎(범 호) 之(갈 지) 勢(권세 세)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 도중에 내리면 잡아먹히므로 내릴 수도 없는 형세를 비유]
아빠 > '처현부화소(妻賢夫禍少)'라는 말이 있지. '아내가 현명하면 남편에게 재앙이 적다'라는.
연빈 > 아빠, '기호지세'라면 '호랑이를 탄 상황'이라는 말인데 웬 엉뚱한 말이야.
아빠 > 물론 기호지세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상황(처지)'이라는 말로 '아주 위험한 처지'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지. 그러나 그 유래가 현명한 부인과 관계된 것이라서 아빠가 먼저 그런 말을 한 거야.
연빈 > 그렇다면 당연히 그에 관한 옛날 이야기를 알아야 되겠네.
아빠 > 물론이지.
유비, 조조, 제갈량 등 우리 귀에 익은 인물들이 활동하던 삼국시대를 통일한 위(魏)나라.
이 위나라는 나라 이름을 진(晉)으로 고치고 천하를 다스린 지 약 50년 만에 북방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망하게 된다.
할 수 없이 진은 남방 양자강 지역으로 내려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이를 동진(東晉)이라 했기에 그 전을 서진(西晉)이라 한다.
우선 서진이 있던 지역은 흉노, 갈, 저, 선비, 강의 다섯 이민족, 즉 오호(五胡)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이에 저항하는 한족들과의 대립항쟁으로 약 130년 동안 16개의 나라가 흥망을 거듭하게 되는데 이를 일러 '5호 16국 시대'라 한다.
한편 동진은 내란으로 얼마 되지 않아 망하고 송(宋), 제(齊), 양(梁), 진(陳) 등의 나라가 이어지게 되는데 이를 남조라 한다.
또한 북쪽은 혼란을 거듭하다 이민족 중 선비족이 후위(後魏 - 북조)를 세운 이후 동위, 서위, 북제, 북주 등으로 나라의 이름이 바뀌면서 이어지게 되는데 이 남북의 상황을 역사는 '남북조시대'라 한다.
북조, 즉 5호 16국의 마지막은 북주(北周)라는 나라가 장식하는데 기호지세의 고사는 서기 581년 이 북주를 무너뜨려 수(隋)를 세우고, 8년 후 남조의 진까지 멸망시켜 명실상부하게 천하를 통일하는 수나라 문제(文帝) 양견(楊堅)의 부인 독고황후의 말에서 나오고 있다.
북조의 선제(宣帝)가 죽은 호기를 틈타 황제의 지위를 양도받으려는 시도는 아무리 똑똑하고 대담한 양견이라 해도 피를 말릴 정도의 긴장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때 온순하게 부덕만 지키고 있던 후일 독고황후가 되는 부인이 사람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게 된다.
"기호지세부득하호(騎虎之勢不得下虎)
호랑이를 타셨으니 도중에서 내릴 수는 없습니다. 도중에서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랑이와 함께 최후까지 가셔야 합니다. 이미 대사에 착수하셨으니 도중에서 꺾여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목적을 이루시도록 하십시오."
연빈 > 햐∼, 대단한데. 이 정도면 어떤 남편이라도 용기가 백배 나겠는걸.
아빠 > 그렇지? 더 대단한 것은 이민족이 가지고온 800만금이나 되는 패물을 사라고 어떤 사람이 권하자, 이 사람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야.
"지금 외적의 침입이 빈번하여 장병들은 방위에 힘쓰느라 정신이 없다. 패물을 살 800만금의 돈이 있으면 우선 공을 세운 장병들에게 나누어주겠다."
정말 외유내강의 본보기라 할 만하지. 자, 그럼 여세를 몰아 다음의 '파죽지세(破竹之勢)'로 가기로 하자.
[제공 : 고사성어의 재발견, 박순흥, (주)미래와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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